
지난 해 9월,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운동을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개인 PT를 시작했는데,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만에 건강해지는 몸을 보면서 신이나 있었고, 인스타 사람들의 멋진 몸을 보면서 막연하게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해볼래? 라고 물어봐주셔서 일단 해보기로 했다.
나는 마른 비만 체형이었고, 그동안 한 번도 몸매를 위한 다이어트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식단을 하는게 너무 재밌었다. 먹는 것을 바꾸니까 군살이 빠지고 몸이 가벼워지는게 너무 신기했다.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음식의 맛을 느끼면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싫어했던 견과류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식단을 2달 이상 가져가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쌀밥, 빵, 과자를 끊으니까 화가 났다. 어쩌다가 한 번 먹는 서브웨이는 정말 황홀한 맛이었다.
못참을 때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건데 하면서 뷔페에 가서 벨트풀고 음식과 싸우고 왔다.
이것도 다 지나간다고 전문가 쌤의 말을 듣고 어찌어찌 넘겼다.
그런데 식단이 5개월정도 지속되니까 정말 미친듯이 빵이 먹고 싶은 것을 주체할수가 없었다.
5개월 동안 치팅을 전혀 안 한것도 아닌데 뭔가를 먹고 나면 먹는 것을 멈출수가 없고 꼭 배가 부를 때까지 먹어야하고,
충분히 먹고 나서도 또 먹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싶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몬드를 하루에 20알만 먹을 수 있다는게 너무 서럽고 힘들었다. (식단을 안하는 지금은 아몬드를 20알 먹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다.)
이 때 나는 분노가 넘쳐서 분수를 모르고 세상과 싸우고 싶었다.. 운동을 오기로 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니 계속 불만이었고, 엄청 까칠해져서 누가 나를 건들기만 하면 달려들어서 싸웠다.
심지어 운동도 하기 싫어졌다. 근육통에 시달릴때도 운동을 하기 싫은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화가 단단히 나서 해야 할 일을 안하겠다고 한 것이다.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본모습이 드러났고, 내 바닥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우리 머릿속에는 원숭이가 있다는 말을 읽은 것 같다.
그 원숭이와는 절대로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원숭이와 싸워서 이기려고 했고, 계속 지다가 마지막이니까 제발 한번만 봐달라는 심정으로 사정사정했다.
결국, 원숭이와 주변의 도움으로 마지막 2주간 이 악물고 식단과 운동에 집중해서 원하던 복근을 만들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2주간 내가 계속 생각한 것은 이것만 끝나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할지였다.
진짜 문제는 바디프로필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 찾아왔다.
그림자가 짙은 만큼 밝은 것처럼, 힘들었던 만큼 촬영 후의 시간이 꿈만 같았다.
일단 촬영을 마치고 초콜릿을 입에 넣고 갈비찜을 먹으러 갔고 집으로 가면서 치킨을 시켰다. 디저트 가게에서 도넛과 케익을 잔뜩 사서 식탁에 쌓아두고 먹었다. 눈에 보이는 빵집은 다 들어갔다. 리스트에 적어둔 단거(DANGER)를 남김없이 클리어했다.
폭식으로 위염이 왔다.
식단을 하기 전에는 딱히 먹을 것에 집착이 없었고, 과자를 많이 먹으면 속이 안좋아서 한봉지를 한번에 다 먹지 않았는데
이제는 걸신들린것처럼 눈에 먹을게 보이면 미친듯이 집어넣었다. 너무 괴로웠다.
얼마나 힘들게 만든 몸인데 통제가 안되고 미친듯이 먹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자괴감이 밀려왔다.
만두전골을 먹는데 배가 불러서 그만 먹고 싶은데도 내 몸이 계속 먹었다.
위염약과 과식으로 2달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식욕이 잦아들었다.
몸무게는 당연히 원상복귀. 그나마 운동을 계속 해서 더 찌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누군가는 바디프로필 찍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극한으로 나를 몰아넣은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건강하고 가벼운 몸으로 살아 본 것도 처음이었고,
나의 바닥을 마주한 것도 처음었고, 나의 복근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으로 본 것도 처음이라서,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와 도움에 감사하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운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식단 관리를 꾸준히 한다.
그 사람들이 식욕을 억제할 수 있는 이유는 식욕보다 중요한 다른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더 중요한 일에 몰두할 때 식욕을 잊을 수 있다.
운동도 식단도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계속 찾아가야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고구마는 신이 내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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